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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movie/국내

[드라마/실화바탕] 도가니(2011) 공유, 정유미, 김현수

출처.네이버 영화.포스터

 


 2011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된 것은 스쳐 지나가는 장면조차 불쾌하고 끔찍해서 영화를 처음부터 온전히 감상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명 '도가니 사건' 은 특수학교 교직원들이 7~20세의 청각 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성폭행, 성추행한 사건이다. 
 
 2005년 6월 장애인 성폭력 상담소에 제보된 이 사건은 5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에 MBC PD수첩에서 보도되었고, 그 후 약 한 달 만에 가해자들이 구속되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6명 중 4명만이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들마저도 항소심에서는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리고 4년 뒤인 2009년 6월 소설 '도가니'가 출간되었고, 2011년 9월에 영화 '도가니'가 개봉하였다. 영화가 개봉하고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국민들은 서명운동을 통해 재수사를 요청하였고, 경찰은 영화 개봉 6일 만에 재수사에 돌입했다. 그 해 11월 17일 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공소시효 폐지 내용이 담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인 도가니법이 긴급 시행되었다. 결과적으로 가해자들은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사건의 장소였던 인화학교는 2012년에 폐교하였다.
 
 
(327) [#알쓸범잡2] 영화 '도가니'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부실한 법과 믿을 수 없는 판결 | #갓잡은클립 #샾잉 - YouTube

 

 며칠 전 유튜브 페이지를 넘기다가 '알쓸범잡2' 에서 사건을 다룬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에서는 사건의 전말과 이후 가해자들에 대한 판결, 재수사 및 법 개정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영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건의 원인]

1. 폐쇄성
 - 학교의 모든 관계자가 친척관계였던 점.
 -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기숙사 학교였던 점.
 - 교사들이 불법적인 기부금을 내고 취업했던 점.
 
2. 약자인 피해자
 -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
 -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님 또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등 사회적 약자였던 점.

[가해자들에게 경미한 처벌이 이루어졌던 이유]

1. 당시 법이 가해자들에게 유리했다.
 - 성범죄는 친고죄로, 피해자가 고소해야만 수사와 재판이 가능했다.
 피해자가 고소를 안 했거나, 피해자가 고소 후 합의를 하면 그 순간부터는 처벌할 수 없었다.
 - 고소의 기한이 정해져 있었다. 
  범인을 안 날부터 1년 안에 고소해야 한다. 
  "피해자의 고소는 범행일인 2000.10.으로부터 6년 여가 경과된 2006.10.9에야 이루어진 것이 명백하고... 사건의 고소는 1년의 고소 기간이 경과한 후의 고소로서 부적법하다."

2. 장애인에 대한 준강간죄로 기소 (친고죄X. 고소기한 X)
 - 강간죄 : 가해자가 폭행, 협박으로 피해자를 제압하고 간음
  준강간죄 : 가해자가 폭행, 협박하지 않아도 이미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서 간음
 - 바지를 내리려고 하자 수화로 '싫다'라고 의사 표명하고 바지 끌어올린 점을 항거했다고 본 법원. 즉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 

 

 영상에서는 사건이 소설과 영화로 알려지며 국민들의 힘으로 제대로 된 판결이 이루어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임에는 틀림없다. 미성년자 성범죄자에게 고작 징역 8년이라니. 가해자가 석방되면 피해자는 고작 20대일 뿐이다.

 

 2024년이 된 현재까지도 성범죄 처벌은 너무도 가볍다. 특히나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는 피해자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안심하고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법이 지금보다도 더 강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며칠 전,  부산 여행을 갔다가 보수동 책방골목에 위치한 한 북카페에 들렀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은 테이블 바로 옆에 위치한 책장에서 공지영 작가님의 소설 '도가니'를 발견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그곳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소설은 주인공인 '강인호'가 무진시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설 초반은 미스터리함이 가득하다. 안개가 자욱한 무진시. 이상할 정도로 선생님을 경계하는 아이들. 비명소리. 침묵. 폭력의 흔적. 죽음. 순식간에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주인공인 '강인호'에 이입되어 불길하고 찝찝한 기분을 품은 채 자애학원에 들어선다.
 
 주인공은 자애학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목격하고, 의심하며, 갈등한다. 강인호는 상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불합리한 일을 마주하면 눈을 번뜩이며 달려드는 영웅은 아니지만, 애절한 아이들의 부탁을 거절하지는 못 하는 마음 약한 어른이고, 아이들이 당한 일을 듣고 나서는 분노하고 슬퍼하지만, 앞장서서 나서지는 않는 비겁한 인물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 돕지만, 끔찍한 일을 당한 아이들보다 결국은 내 가족이 더 중요한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다.
 
 소설을 보는 내내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몰입감이 뛰어나고 여운도 가득해서, 영화화되었을 때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책을 덮자마자 영화를 켰다. 
 
 

영화 '도가니' 스틸컷_배우 공유 (강인호 역)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안개가 자욱한 무신시로 향하는 강인호와 철길 위를 걷는 아이를 번갈아 비추며 영화가 시작된다. 

 

 우여곡절 끝에 자애학원에 도착한 강인호는 나름 밝은 얼굴로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웃지도 않고, 마주 인사하지도 않는다. 머쓱해진 강인호는 교장실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교장과 행정실장도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교장실에서 나온 강인호는 행정실장에게 학교발전기금을 요구받는다. 아는 교수의 소개로 받아준 것으로만 알던 강인호는 당황하고, 어머니에게 돈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강인호는 첫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 또한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하였지만, 아이는 반응이 없다. 그 아이의 옆에는 정물화 수업을 위해 교탁에 올려두었던 사과를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있는 아이가 앉아있다. 황당함에 실소를 터트리기도 잠시, 한 아이가 뒤늦게 교실로 들어선다. 아이의 얼굴은 멍투성이였다.

 

 교무실로 돌아온 강인호는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확인한다. 아이가 가진 장애와 특이사항,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강인호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아이들의 장애도 장애였지만, 학부모들도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사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생활기록부를 확인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홀로 학교에 남아있던 강인호는 학교를 나서던 길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여자화장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러나 강인호가 누구 있느냐 묻는 순간, 소리가 뚝 끊긴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강인호가 여자화장실 문에 손을 올리는 순간, 학교를 순찰하던 수위가 강인호를 나무란다. 원래 아이들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논다는 수위의 말에 강인호는 그대로 돌아선다.

 

 

영화 '도가니' 스틸컷_배우 정유미 (서유진 역)

 

 

영화는 핵심적인 사건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이 각색되었다. 
 
 우선 강인호를 자애학원에 취업할 수 있도록 소개해주고, 줄거리 내내 강인호를 흔들며 현실로 끌어냈던 아내는 사망한 것으로 표현되고, 대신에 강인호의 어머니가 강인호의 딸을 돌보며 소설에서 아내가 했던 역할을 대신한다. 소설에서는 연두에게 사랑을 주고 끝까지 연두를 보듬어주었던 연두의 부모님은 영화에서는 사망한 것으로 나타난다. 생활지도교사 박보현과 강인호의 옆자리 동료인 박 선생은 한 사람으로 표현된다. 

 

 

 인물뿐만 아니라 수많은 장면들이 빠지고, 또 더해졌다. 호흡이 긴 소설을 영화화하며 필요에 따라 각색을 하였겠으나, 소설을 먼저 읽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서유진' 캐릭터였다.

 

 영화 속 서유진은 미혼에, 자주 경찰들을 곤란하게 하는 젊은 인권운동가였다. 강인호와 대학 동창으로 표현되었던 소설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강인호와 무진에서 처음 만난다. 


 강인호의 차를 뒤에서 받은 서유진은 적반하장으로 강인호를 몰아붙인다. 강인호는 차에 시동도 걸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서유진은 그에게 술냄새가 난다며 되려 큰소리를 친다. 정작 새벽까지 술을 마신 것은 그녀였음에도. 카센터 사장님의 중재로 서유진은 강인호에게 사과를 하고 그를 자애학원까지 데려다주지만, 꽤나 불쾌함을 안겨주는 장면이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외치는 목소리만 큰 인권운동가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설 속 서유진은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고문을 당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으며, 정치인 남편과 이혼하고, 선천성 심장기형을 가진 아이를 출산하였다. 대학생 강인호의 눈에는 너무 완벽해서 부담스럽기까지 했던 그녀의 첫인상은 삶에 많이 지쳐있어 보였다. 강인호의 설렘이 신경질로 바뀔 만큼. 그럼에도 서유진은 자신의 딸들을 위해, 끔찍한 일을 당한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인물이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장경사는 서유진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왜 쉬운 길 놔두고 그렇게 어렵게 사는지 답답하고 바보 같았어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예를 들어 처음 경찰이 되고 한 일 년 반쯤만 하다 마는 거잖아요. 스물몇 살이 되면 없어져야 하는 거잖아요. 결혼하고 애 생기고 여기저기 부모님 아프시기 시작하면 고만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혼하고 애 아프고 부모님도 성치 않은 당신이 그걸 하고 있으니까...

 
 
 순진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는 거냐 묻는 장경사에 서유진은 이렇게 답한다.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서유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는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단념하는 듯하면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강인호가 가지지 못한 영웅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도 서유진의 이런 면모가 여러 번 드러나고는 한다. 다만, 이제 막 사회를 알아가는 듯한 패기 넘치는 서유진의 분노보다 세상에 지치고 지쳐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겨운 서유진의 분노가 더 와닿아서,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 각색된 서유진의 캐릭터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도가니' 스틸컷_배우 김현수 (김연두 역)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가치 있지만, 잘 만든 영화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첫 번째로, 장면 간, 대화 간 침묵이 어색할 정도로 길다. 교장과 행정실장은 한 배우가 1인 2역을 맡았는데, 2011년의 영화라 편집 기술이 부족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대사도 어딘가 경직되어 있다. 장면이 전환될 때에도 사건의 나열처럼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있어, 모든 장면이 어색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두 번째는, 노골적인 성폭력 장면 묘사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표현해야 했을까? 관객들에게 강한 충격을 안겨주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동시에 관객이 아이를 성폭행하고 있는 듯한 불쾌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회상 장면 없이 아이들의 표현만으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는 각색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는 소설의 많은 부분을 각색했다. 인물에 대한 각색도 있었지만, 장면에 대한 각색도 많았다. 아쉬운 점은 그 각색으로 인해 강인호와 아이들 간의 유대 관계가 쌓이는 과정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챙기고 보듬어주는 강인호의 역할 일부가 서유진에게 옮겨가면서, 아이들이 강인호보다는 서유진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는 이후 연두가 강인호에게 자신이 장애를 갖게 된 과정을 말하거나, 법정에서 강인호를 보고 안심하는 장면 등에서 공감이 조금 반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강인호가 화분을 들고 박 선생의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이 추가된 듯한데, 강인호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이었나 싶어 그리 만족스러운 장면은 아니었다. 

 

 

영화 '도가니' 스틸컷_배우 정인서 (진유리 역)

 


 소설, 영화 중 무엇을 먼저 보라고 추천하기가 참 힘들다. 소설 원작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잘라낸 장면들이 많다 보니 늘 영화에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에서 감명 깊은 장면들, 영화로 표현되었으면 했던 장면들이 실제로 그렇게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소설이 영화보다는 더 감명 깊었다는 점이다. 강인호와 서유진에 이입해 그들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고뇌하고, 분노하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2018년에 올라온 기획 뉴스의 일부이다. 

 

 ▶도가니 사건 지금은

도가니 사건에 대한 분노는 사건 이후 피해자, 제보자의 근황까지 관심 가져줄 만큼 오래가지 못했다.

뜨겁게 달아오르다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에 빗댄 ‘냄비근성’이라는 말만 남겼을 뿐이다. 

지난해 3월 ‘도가니’ 사건 피해자 30명 중 19명이 5년간 임시 보호됐던 모 행복 빌라에서 곰팡이가 핀 빵을 제공하고 머리카락 락을 강제로 자르고, 폭행하는 등 학대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성폭력 대책위에 참여한 교직원들은 파면과 임용취소, 정직 등의 징계를 받았으며 특히 사건 최초 내부고발자는 당시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해임 통보, 지방노동위는 정당한 해고라고 판결해 복직하지 못하고 현재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인화학교는 폐교되어 학교 부지엔 장애인 수련시설이 들어서고 서서히 잊히고 있지만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원회’는 출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출처 : 한국뉴스투데이(http://www.koreanewstoday.co.kr)

 

 

영화 '도가니' 스틸컷_배우 백승환 (전민수 역)

 

 

 영화를 리뷰하며 소설에 더 초점을 맞춘 글을 쓴 것 같지만, 영화도 한 번쯤은 감상해 보길 바란다. 

 
 현재 넷플릭스, 왓챠, 티빙에서 시청이 가능한데, 이 중에서 왓챠만 수화 통역이 된다. 넷플릭스와 티빙은 수화가 나올 때 전혀 자막이 없어서, 수화만 나오면 소외되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처음엔 연출인가? 했는데, 왓챠로 다시 보니 아무리 그것이 연출이었더라도 자막이 있는 채로 보는 게 훨씬 영화에 집중이 잘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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